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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드라마 산책/원작이 있는 영상

레저베이션 로드 Reservation Road (2007)

by 코코리짱 2009. 2. 10.


돌아올 수 없는 길, 상실의 아픔과 상처를 그린 레저베이션 로드

레저베이션 로드에서 사고로 두 가정은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죽음은 언제나 우리 주변에 있다. 더군다나 언제 어디서 어떻게 올 지 예측할 수 없는 죽음은 더더욱 많다.
한 살 더 먹을수록 접하게 되는 소식들은 새 생명의 탄생보다는 주변인들의 부고의 소식들이 많아지고, 무수한 죽음의 소식 중에서도 잊혀지지 않고, 지워지지 않는 죽음의 기억이 나에게도 있다.
대학교 신입생 시절 접했던 동아리 친구의 갑작스러웠던 사고사. 
병사나 수명을 다해서 세상을 떠나는 경우 슬프고 고통스러워도 이미 예측했던 것이기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
즉, 죽음의 당사자가 세상을 떠날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는 상황과 그렇지 못한 상황의 경우가 다른 것이다. 

대학교 신입생 첫 축제가 다가올 무렵, 공부만 하다가 들어와서 맨날 술만 마시면서 보내던 대학교 생활에 염증을 느꼈던 시점쯤에 갑작스러운 사고의 소식. 그리고 축제 기간 중 결국 세상을 떠났던 그 친구의 생각을 하면 지금도 가슴 한구석이 쓰라리다.
너무나 젊은 나이에 아들을 잃어 오열하던 그애의 어머니와 내 눈엔 너무도 무심해보였던 그 아이의 친구들과 과 선배들.
같이 사고를 당했지만 살아남았던 다른 한 친구.
당시에 나는 살아남은 그 친구를 증오했다.  
정확하고 자세한 이유는 나름 프라이버시의 문제이니 밝힐 수 없고, 친구의 죽음은 살아남은 그 아이의 책임이라 생각했다.
(왜 내친구는 죽었는데라는 분노가 많이 작용했었던 듯.)
친구를 잃은 슬픔은 그 아이를 향한 증오로 변질되어 갔다.
지금와 생각하면, 가장 힘들었던 건 아마도 살아남은 그 아이가  아니었을까.
나조차도 아직까지 잊지못하는 죽음인데, 평생 자신때문에 친구가 죽었다는 죄책감을 끌어안고 그것을 짊어지고 살아야할지도 모르는 그 아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매년 5월이면 세상을 너무나도 일찍 떠나버린 친구의 기억때문에 가슴이 답답해지곤 하지만, 최근엔 살아남은 그 아이는 잘 지내고 있을까하는 걱정도 같이 하곤한다.

나에게 있어서 이 사건을 떠오르게 했던 영화 레저베이션 로드.
영화는 두 가정의 가장 행복했던 장면들이 교차되면서 시작된다.
사랑하는 아들과 함께 경기를 보고 응원하며 즐거운 하루를 보내던 드와이트 아노.
그리고 피크닉을 보내면서 즐거워하던 러너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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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꿈같은 하루는 지나가고 화장실이 급하다는 딸내미를 위해 레저베이션 로드에서 잠시 차를 세우고 휴식을 취하던 러너 가족.
차 안에서 반딧불을 놓아줘야 한다는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들었던 아들내미는 반딧불을 놓아주기 위해 나와있었고,
이때 마침 레저베이션 로드를 지나가던 드와이트 아노는 아들과 함께 지나가다가 차를 피하려다가 그만 러너가족의 아들을 치고 그냥 지나가고 만다.
너무나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고, 그 일로 인해 두 가족의 운명은 가혹하게 변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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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던 아들이 갑작스러운 뺑소니 사고로 죽은 러너 가족.
깊은 슬픔 가운데서, 중심축이 되어줘야 하는 아버지 에단 러너는 경찰의 무능력에 분노하고, 잡히지 않는 범인을 잡기 위해 다른 가족들을 점점 외면하게 되고.
(마치 영화 조디악에서 잡히지 않는 범인에게 집중하고 또 집중하지만, 결국에 잡을 수 없었고 많은 사람들을 불행으로 이끌고 갔었던 것처럼.)
아들이 죽은 원인이 바로 자신의 탓이라고 자책하는 어머니 그레이스.
오빠가 너무 일찍 죽었기에, 어린 나이에 오빠의 죽음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어린 딸 엠마.
그리고 드와이트 아노는 결국 한 가족의 행복을 산산조각냈다는 사실을 깨달고, 하루하루 고통과 죄책감에 시달린다.
언제 붙잡힐까, 자수할까의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시달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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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레저베이션 로드에서의 사고 이후 두 가족의 변화와 슬픔을 보여주고 있다.
한 번 일어난 일을 되돌릴 수 없듯이, 이미 일어난 사고. 죽은 사람은 아무리 슬퍼하고 분노해도 되돌아오지 않는다.
한 번 새겨진 마음의 상처와 깊은 슬픔은 아무에게도 위로받을 수 없다. 결코.
단지 살아가기 위해 그냥 그 새겨진 상처와 슬픔과 공존하는 방법을 배워갈 뿐.
내가 이 영화를 너무나 불편하게 볼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미 겪었던 일들이 다시 생각나서였다.
늘 곁에서 볼 수 있었던 사람(언제까지나 볼 수 있는지는 알 수 없겠지만)이 어느날 갑자기 저 세상으로 간다는 건 정말 악몽같은 일이다.
바로 그 전날까지도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마저도 생생하다면 말이다.
마치 창자가 뒤틀리고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고통을 받으면서 영화를 보다가, 결국 결론으로 갈 무렵 잠시 극장 안을 떠났다가 볼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영화를 본 날 속이 좋지 않기도 했다. 무척이나)

레저베이션 로드는 나에게 있어서 가장 보기 힘들었던 영화로 남을 것이다.
좋은 영화이지만, 너무나도 보기 힘겨웠고 심신을 망치로 두들기는 듯한 고통을 안겨준 영화.
원작소설도 있다는데, 영화보다 더 아플 것 같아서 읽기가 두렵다.

내 생애 가장 슬픈 오후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존 번햄 슈워츠 (랜덤하우스코리아,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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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www.cine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