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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 서재

B급 연애를 하면서 줄기차게 시행착오를 겪는 여자들을 다독이는 책 '누구의 연인도 되지 마라'

by 코코리짱 2009. 10. 23.

김현진이란 이름 세 글자를 강렬하게 인지하게 된 계기는 우연히 잘 가던 매거진T(지금은 운영중단됨)의 "이상한 나라의 TV"라는 그녀의 칼럼을 통해서였다.
어린시절 재미나게 보던 빨강머리 앤과 꼬마숙녀 링에 대해서 쓴 칼럼을 읽었을 때, 뭔가 머리를 망치로 한대 맞은 기분이었달까?
'소녀들아, 아저씨들을 믿지마'부터 시작해서 호기심을 자극하고,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었고, 그녀만의 독특한 개성이 통통튀는 문체는 막힌 가슴이 뻥 뚫리는 해방감을 선사해주었다.
동굴 속에 들어간 남자의 동굴을 폭파해버리자는 속이 후련해지는 글은 이제까지 처음이었다.
'동굴에 들어간 남자는 나올때까지 아무말없이 기다려줘야 한다.'무작정 남자를 이해하고, 달래줘야 한다는 기존의 수많은 글들, 연애관련 책자들과는 정반대였달까.
아무튼 매거진T에서 그녀의 그들을 모아 만든 책(당신의 스무 살을 사랑하라)이 출판되었을 때 그 책을 받고 얼마나 많은 위로와 위안을 얻었는지 모른다.(지금 현재 그 책은 나보다 더 그 책이 필요한 동생에게 가 있지만)
당신의 스무 살을 사랑하라
카테고리 자기계발
지은이 김현진 (해냄출판사,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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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T에서 그녀의 글을 더이상 읽지 못하게 되었을 때 참 많이 아쉬웠는데, 위드블로그 캠페인에서 우연히 보게 된 그녀의 책.
"누구의 연인도 되지 마라."
누구의 연인도 되지 마라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김현진 (레드박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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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너무나 도발적이다.
이 책을 들고 있었을 때 어떤 분은 무슨 일 있었냐고 되물어 볼 정도였으니까.
이 책을 읽을 무렵의 나는 몇 번의 거듭되는 만남에서 지쳐가고 있었고, 잘 될 것 같다가도 본색을 드러내는 상대방에게 실망하고 또 실망하다가, 문제는 나에게 있는 게 아닐까 한없이 자신을 깎아내리는 자포자기 상황에 이르렀다.
나에게 맞는 반쪽은 정말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몰라하는 절망감에 읽어왔던 몇 몇 연애관련 책들은 위안이 되기보다는 문제는 너에게 있으니, 너 자신을 고치고 남자입장에서 생각하고 맞추라는 이야기 투성이였다.
마치 영화 어글리 트루스 초반에서처럼 말이다.
남자가 좋아하는 말투와 옷차림, 행동, 기타등등. 숨통이 막힐 지경이다.
밀고당기기 전략까지 완벽하게 구사해야 하고, 이것저것 따지는 것 많은 최근의 연애패턴에 따르자면 난 전형적인 연애 낙오자, 건어물녀.
밀고 당기기같은 건 애시당초 못해서 상대방에게 속마음 훤히 보여주고, 매번 급한 성격은 주체하지 못해서 폭발해버리고, 연애지침서에서 절대로 하지 말라고 하는 말은 모두 하고 혼자 자폭해버리는 그런 여자.
이 책에서 정의한 B급 연애가 바로 내가 해왔던 연애였다.

0123


'착한 남자'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고, 누구나 바라듯이 이 여자도 '착하고 괜찮은 남자'를 원한다.
하지만 이 여자는 그런 남자에게 사랑받을 자신이 없다.
그래서 B급 남자만 만나고, B급 사랑만 주고, B급 사랑만 받는다.
이것을 나는 B급 연애라 부른다.                                                                                     
  - p.17, 1부 도입부

그렇다고 B급 연애라도 많이 해봤냐 싶은가 하면 그런 것도 아니고.

일반적인 연애 지침서가 절대 ~하지 말아라나 먼저 성공적인 연애를 끌고나간 언니들의 조언 같았다면, 김현진의 책은 쿨한 연애(그러나 연애를 해본 사람들이라면 모두 알 것이다. 연애는 절대 쿨하지 않다.)를 하지 못하는 대다수의 우리들에게 조언보다는 차라리 각각의 기막힌 사연을 듣고 술 한잔 건네주며 같이 술마셔주며 공감해주는 느낌이 들었다면 정확할까.
그냥 비슷하게 힘든 연애를 하고 있는 친구와 수다떨면서 같이 속시원하게 욕하고 어깨 다독거림으로 마무리하는 그런 책이다.
사회적 편견이 난무하는 대한민국(심지어는 여자의 적은 여자일 정도)에서 그 편견과 시선 속에서 이런 사랑을 하고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들이 그렇게 삶과 사랑을 하게 된 원인이 있다는 것을 가슴깊이 이야기 하고 있다.

앞서 소개했던 연애관련 서적들이 나를 되돌아보게 만들고, 약간은 살벌한 현실을 깨달게 해줬다면, 이 책은 아직도 나는 살아숨쉬고 연애할 수 있는 여자라는 것을 강렬하게 인지시켜 준다.
B급 연애를 하다가 실패에 거듭한다 한들 어떠한가. 단지 그 사람이 나와 인연이 아니고 맞지 않았기 때문인 것을.
연애를 하다가 실패하더라도 다시 연애할 수 있는 힘을 나에게 준 책인 '누구의 연인도 되지 마라'.
자신을 연애낙오자라 생각하시는 분들께 강력추천하고 싶다.

책을 읽다가 인상깊었던 구절이 있어서 소개해본다.

험한 세상에서 마음약한 아가씨들이 명심해야 할 것은, 내가 나를 무시하면 다른 사람들은 아주 대놓고 밟는다는 것이다.
무서운 세상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나는 내가 싫어 죽겠어, 너무나 한심해.' 이런 생각만은 해서는 안된다.                                 - p. 113, 2부 도입부

우리가 명심할 거야 그냥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거.
얻어먹는다고 공주되는 거 아니라는 거 좀 심하게 말하자면, 빨리 잡아먹을 돼지에게 사료도 더 자주 주는 법이라는 것이다.
때로는 부모의 사랑조차 공짜가 아니다.
인간관계에서 주고받는 것은 죄다 부메랑이게 마련이다.                                                                              - p. 157, 3부 도입부

마지막으로 가장 공감하는 글이라면 바로 연애에 대한 작가의 진심어린 충고가 아닐까.
 
아가씨들아, 우리 기운 좋을 때 연애하고 험한 꼴 볼라치면 얼른 내빼자.이상.
내가 했던 그 모든 연애에 대해서도 이제 더는 할 말이 없다.
죽을 만큼 사랑했고 죽일 만큼 미워했다. 이상.                                                                                             - p. 238, 나가는 말

<이미지 및 정보출처 : http://www.cineseo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