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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나면 끄적끄적

사랑니를 뽑는 건 두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야.

by 코코리짱 2008. 5. 22.

오늘 드디어 사랑니를 뽑았다.
병원에 가기 무지 가기 싫었는데, 그래도 피해갈 수 없는 거라면 해야지.
어쩌겠어.

아무튼 가기 싫기도 했지만, 어찌저찌하다보니 예약시간보다 한참 늦게 갔는데...
기다리는 동안 무서움이 가득가득.
어제 울오빠도 사랑니를 뽑았다는데, 사랑니가 잘못나서 채석장 돌 캐듯...
쪼개서 뽑았다고 들었다. (더군다나 꼬매기까지 했데, 힘겹게 뽑아서.)
기억을 더듬어보면 엄마도 사랑니 뽑았을 때 힘드셨던 것 같구.

으으. 싫어, 싫어.
안 뽑고 싶어.

오늘도 해맑게 인사하시는 치과 의사.
(그러나 항상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얼굴은 제대로 못 봄. 일단 그래서 더 무서움.)
해맑게 인사해도 인사받는 쪽은 무서워서 바들바들.
그 의자에 누울 때가 가장 긴장되는 순간같다.
간호사도 친절하고, 의사도 친절한데 치과는 너무 무서워.
(아니, 역설적으로 무서우니까, 더 친절한 거 아닐까.)
나만 무서워하는 건 아니겠지?
아주 어릴 때부터 이가 안 좋아서 치과를 자주 갔는지라, 치과에 대한 안 좋은 기억만이 가득가득하다.
울오빠 이빨을 커다란 기구로 뽑았던 기억하며, 치료받을 때마다 들리던 드릴 소리.
공포영화의 한장면 같다. =_=

아무튼 누워서 "사랑니 뽑을 꺼예요."했더니, 의사 웬지 반가워하는 기색.
나의 고통은 의사의 기쁨인거야? 농담이고, 뽑는 게 좋다고 생각했나보지.

의사 : 자~ 어디부터 뽑을까요? (웬지 좀 신나신 듯? 원래 말투가 그러신건지 모르겠음.)
나 : 선택해야 하나요? (뽑는다는 사실만으로도 끔찍한데 선택해야 한다는 사실에 짜증.)
의사 : 그럼 알아서 할까요?
나 : 저번에 저쪽 이빨을 뽑았으니 이쪽부터 뽑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의사 : 위쪽을 뽑을까요? 아래쪽을 뽑을까요?
나 : 가장 안 아픈 곳부터 뽑아주세요. (간절하게~)

아아, 충치치료와 병행된 사랑니뽑기인지라 한층 더 괴로움.
마취 주사바늘은 최대한 안 아프게 놓는 것 같은데,,,잇몸에 주사마늘이 들어간다는 사실만으로도 끔찍.
사실, 의사는 상당히 친절했다.
조심조심, 세심하게 치료했는데...

얼굴을 가리고 치료하는 것도 무서웠고(무섭지 말라고 가리는건데.),
충치치료하면서 들리는 드릴소리. 내 이빨이 갈리는 기분.
마취 해서 감각없는 입. (제대로 안 다물어지는 입.)
가뜩이나 작은 입인데, 치료시간 내내 벌리고 있으려니 찟어질 것 같은 입.
(예전 어느 치과에서는 아예 벌려놓는 기구를 넣고 치료했던 듯?)
마취했음에도 이빨 신경을 건드린 건지, 어쨌는지 좀 깊이 아파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한줄기 흐름.

충치치료 후에 사랑니 뽑는다고 하는데...
(주사 아플 꺼라고 다 이야기 하면서 예고하니까 더 무서움. 예고살인인 겁니까.)
긴장감은 백배.
입은 바들바들 떨리고. 한숨나오고, 침 고인다.

드디어 운명의 시간.
이를 뺀찌로 흔드나봐.
근데 솔찍히 이야기 하자면 이 흔들흔들하는 과정에서 생니의 뿌리가 움직이는 기분이 느껴지는 건 상당히
불쾌한 경험이다. 마취를 했음에도 아픔이 느껴진다.

의사 : 아프면 아프다고 말씀하세요.
나 : (마취와 벌린 입 때문에 제대로 말할 수 없음) 아야.;;
의사 : 아프세요?
나 :  아야~ ㅜㅜ

아프다고 하니 뭔가 좀 더 갈은 것 같은 기분인데, 얼굴을 가리고 하니 당췌 뭘하는지 모르겠음.
(얼굴을 안 가리고 있을 때도 무서워서 눈 감음.)
암튼 빠지는 순간은 빠지는지도 몰랐다.
근데, 뭔가 피맛이 느껴진다. 웩.

의사 : (해맑게 웃으면서) 수고하셨습니다.
나 : (눈물을 휴지로 닦으며, 의사를 째려봄. 잊지 않겠다 의사.-_-+++) 여분의 솜 좀 주세요.
의사 : 말씀하시지 말고 솜 꼭 물고 계세요.

그 후 귀여운 간호사가 여분의 솜을 가져다주며,
간호사 : 많이 긴장하셨나봐요. 뽑을 때 많이 아프셨나요? 그래도 피는 많이 안나오셔서 괜찮으실 꺼예요.
나 : 다시는 하기 싫은데, 3번이나 또 해야 하잖아요. ㅠㅠ

접수하시는 분도 오늘은 많이 피곤하실 꺼라며, 집에 가서 푹 쉬시라고 한다.
내일 소독하러 또 들려야 하는 치과.
그런데, 생각해보니 의사입장에서는 바들바들 떨면서 긴장하는 나같은 환자를 대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닐 것
같기도 하다. 웬지 해맑게 웃는 의사가 불쌍하구나.
어른이건, 아이건 어르고 달래서 치료해야 하니 불쌍하기도.

아무튼 나 정기적으로 봐야 하는 의사를 또 늘리고 싶지 않은데, 한동안 정기적으로 봐야 하는 의사 중 한 명이
하필이면 치과의사라니.
의사가 아무리 해맑게 웃어도 마취로 인해 부은 입으로 나는 썩소밖에 지어줄 수 없겠구나.
힘들게 치료해주셔서 감사. 사랑니 사실 뽑을 때는 안 아팠어요.
흔들 때랑 충치치료가 더 괴로웠지.
(이 관리를 잘합시다. ㅠㅠ)

마취가 서서히 풀리고 있는 현재 상황.
이빨 전체가 마구 아파오는구나. 나 오늘 잠은 제대로 잘 수 있을까.
오늘 밥은 제대로 먹을 수 있을까.

p.s. 어제 어느 분이 남자친구랑 같이 사랑니 뽑으러 가면 백발백중 헤어진다고 하는데..
      그럴만하다. 마취로 인해 부은 입가, 잔뜩 부어오른 볼.
      아프면 소리도 지를텐데, 그 흉한 꼴 보고 누가 붙어있을까.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