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6일.
예술의 전당에서 아는 동생과 함께 막바지인 픽사전시회를 관람한 후 카페 모차르트에서 음악 분수대 구경하다가 보게 된 전태성 클라리넷 독주회.
항상 오케스트라만 즐겨듣는 나에게는 독주회도 처음이거니와(챔버 오케스트라까지는 공연을 본 적이 있지만), 클라리넷 독주회는 더욱 생소했다. 클라리넷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오케스트라 속에서의 클라리넷과 독주회에서의 클라리넷은 또 다르지 않은가.
그렇기에 곡의 선정을 보고 공연을 선택하게 되었는데, 개인적으로 내가 상당히 좋아하는 카르멘 환상곡과 랩소디 인 블루가 있어서 너무 기대되었다.
예술의 전당 오케스트라 연주는 몇 번 보러 왔어도, 독주회는 처음이기에 상당히 가슴이 떨렸다.
더군다나 일찌감치 갔더니 친절하게 3번째 줄 중앙 자리를 주셨다. 그날따라 너무 덥고, 피곤했기에(픽사전시회간 것이 화근) 혹여라도 앞자리에서 졸면 어쩌나 참 많이 걱정되었다.
친절한 안내를 받아 아담하고 시원한 독주회 공연장에 앉아있노라니, 계속해서 떨리는 기분.
동생도 신기해하고, 둘이서 졸면 어쩌지 어쩌지 걱정하는 동안 공연은 시작되었다.
더운날 임에도 차이나 칼라의 정장을 입고 들어오신 클라리넷 연주자 전태성씨.
첫 시작은 바흐의 파르티타 2번의 마지막곡인 샤콘느.
클라리넷 홀로 웬지 쓸쓸해보이기까지 했던 처음.
혹여라도 졸까봐 노심초사했던 우리들의 걱정을 저 멀리로 날려버릴 정도로 너무나 강렬한 슬픔이 느껴지는 연주에 그만 매혹되고 말았다.
클라리넷하면 항상 안개 속에서 보일 듯 말 듯한 신비로우면서도 비밀스러운 느낌이 들었었지만.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는 듯 힘껏 치솟았다가 끝없이 떨어지는 듯한 절망이 가슴에 내리꽂히는 격렬한 음색은 조금 낮설고도 새로웠다.
더군다나 온 몸으로 음을 느끼시면서 연주하시는 모습은 무방비 상태의 나와 동생에게 많은 감명을 주었다.
두번째 카르멘 환상곡부터 같이 나와서 연주하기 시작한 피아노 연주자 전지훈씨.
카르멘이 워낙 유혹적이고, 정열적이기도 하지만 클라리넷과 피아노 연주가 서로 대화를 나누듯이 주고 받고,
서서히 뜨거워져서 그칠 줄 모르고 활활 타오르는 정염의 화신을 본 듯한 느낌이었다.
상대방을 태워버리고도 남을 무서운 불꽃의 열기를 감당하지 못할 기분이어서, 연주가 끝나고 나서 관중들의 환호성이 엄청났다.
잠깐의 휴식 뒤에 벨라 코박스의 곡들~
남미의 열정적인 춤곡들이 연속되다가, 뭔가 구슬픈 멜로디(웬지 유대인 영화에서 자주 등장했던 곡)의 곡이 심금을 울렸다.
그리고 내가 가장 기대했던 거쉰의 랩소디 인 블루.
일본드라마(만화 원작) 노다메 칸타빌레로 꽤나 유명해진 곡이지만, 이전에도 영화 배경음악에도 자주 등장했었고~
아주 어렸을 때부터 거쉰의 곡을 좋아했었기에 나에게 있어서는 참 특별한 곡이다.
우울하고, 늘어져있다가 정신없이 신나서 돌아다니는 느낌의 곡이어서 속상할 때 들으면 기분이 갑자기 좋아진다.
그렇기에 이 곡을 너무나 신바람나게 연주해주셨던 두분께 일어나서 박수쳐드리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이었는데...
웬지 그러지 못했던 것이 아쉬웠다.
연주가 열정적이고 끝내줬던 것 만큼이나, 아니 그 보다 더더욱, 앵콜도 다양하게 준비하셔서 관중을 매료시켰던 두분께 끝없는 찬사의 박수를 쳐드리고 싶다.
귀에 많이 익은 가요와 광고곡을 연탄곡으로 쳐주신 건 정말 신선한 재미였달까.
(굳이 곡을 알려주지 않는 건, 공연을 갔던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감동이라고 감히 이야기해보고 싶다.)
마지막에 두분이 힘차게 포옹하는 모습도 멋졌다.
앞으로도 더욱 주목해야 할 두 분을 뵙게 되어 영광이었었던 하루.
내게 클라리넷이란 고요하기만 한 악기가 아닌 격정적이기도 한 악기임을 몸소 선보이신 클라리넷 연주자 전태성씨와 독특하면서도 열정적인 훈남 피아니스트 전지훈씨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온 몸으로 느끼고 소통하는 게 바로 음악이라는 걸 다시 한번 느낀 늦더위가 채 가지시 않아, 열기가 더욱 뜨겁게 느껴진 토요일 늦은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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