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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나면 끄적끄적

확실히 새벽의 산책은 좋아.

by 코코리짱 2010. 8. 10.

8월 8일.
그간 앞만보고 달려왔던 결실을 시험으로 끝냈던 하루.
어찌보면 별거 아닌 시험이고, 어려운 시험도 아니건만 모든 에너지를 거기다 쏟아부었는지.
셤2개 봤다고, 아니면 땡볕아래 노출되었던 시간이 좀 되었다고 지쳤던 그날.
별 거 아닌 거에도 자꾸만 짜증이 나고 초조해지고.
별 일 아닌 사소한 것에도 자꾸만 민감해지고 예민해지는 요즘.
한동안 약속을 미루고 사람들을 만나지 않다가 다시 만나려니, 호출할 사람이 아무도 떠오르지 않았다는 게 정답.
정확하게는 누군가를 만나서 또 징징대면서 내 우울한 기분을 전달하기 싫었던 것이겠지만.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에 자꾸만 오래 노출되어 있다보니, 모든 것에 무기력해지고.
속 마음만 자꾸 새까맣게 타들어간다.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노력도 삽질일까 싶고.
그치만 그런 생각은 그냥 일단 뭔가 하면서 접어두도록 하자고 자꾸만 미뤄뒀지만.
계속해서 미뤄둘 수도 없는 노릇이고.
뭔가 답답하고 가슴속에 펑하고 터질 시점이 되셨는지...

무더위에 잠도 오지 않고, 생각은 더 많아져서 머리 속이 과포화상태가 되어거릴 것 같아서.
동네 멀티플렉스에서 심야영화로 아저씨봤다.
리뷰를 쓰고 있는 중인데, 한동안 머리 비우고 글 쓰다가, 다시 생각이 많아지니 글이 안 써져서 또 두덜두덜대고 있다.
확실히 스트레스가 쌓일 때 미남을 본다는 건 좋은 일이다.
스트레스 날리는데 매우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남자들이 왜 걸그룹에 열광하는지, 여자들이 왜 보이그룹에 열광하는지 진정으로 이해가 갔다.
삶이 너무 힘겨우니까 이쁘고 잘생긴 사람을 보면서 위안을 얻고 싶은거다.
꽃을 보면서 잠시 기뻐하듯.

좀 잔인하지만 않았어도 좋을 것 같은데...
그래도 괜찮다. 피묻은 원빈의 모습도 멋졌으니까.

심야영화를 보고 끝난 시간이 1시 30분쯤되었던 거 같다.
차가 끊기는 관계로 우리집까지 30분거리를 늘 걸어서 간다.
수업을 같이 듣던 어린 새댁은 저녁시간대에 약간 어두워졌는데도 먼거리 걸어가는 거에 걱정해주곤 했고.
예전에 같이 일하던 언니들은 내가 아직 험한 꼴을 당해보지 않아서 밤길 무서운 줄 모르는 거라고...철없다고 이야기하곤 하지만.
나는 적막이 흐르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새벽 산책이 좋다.
세상에 나혼자만 있는듯한 기분은 흔히 느낄 수가 없고, 그 상황 속에서 엉킨 실타래같이 복잡하던 머리 속도 같이 차분하게 정리되기도 하고.
그냥 아무생각없이 온전하게 걷기에만 집중하게 되어서 그런지 백지화되는 머리속.
근데, 생각해보니 정말 아무 소리도 나지 않고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 온다고 생각하니...
좀 무섭더라.
새벽 산책을 하면서 조용하고 혼자라는 기분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벌레소리를 듣고 있었고, 간간히 지나가는 차 소리, 사람 소리, 강아지 소리가 없었다면.
나는 결코 편한 마음으로 그 산책을 즐길 수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이 참 우스웠다.
사람은 어쩔 수 없는 사회적 존재인걸까.

혼자 있고 싶어도, 누군가 곁에서 지켜봐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게 솔찍한 심정인가보다.
울고 있어도 누군가 곁에서 다 울기까지 기다려줬으면 하는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심정.

열대아때문인지, 뭣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는 새벽의 혼자만의 산책이 역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