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서울국제빵 과자 페스티벌에 친구랑 구경을 갔을 때, 설탕공예를 시범으로 구경했었다.
한 사람은 프랑스인, 다른 한 사람은 독일인.
독일인은 재료의 낭비도 가급적 줄이려는 모습이 보였고(심지어는 가스불도 쓰지 않을 때는 철저히 꺼두더라.), 상당히 조심스럽고 집중해서 섬세한 작품을 만들었다.
이에 비해, 프랑스인은 재료도 작품도 모든 것이 즉흥적이었고, 가스불은 쓰든 말든 언제나 켜놓고 상당히 산만하게(앞에서 구경하는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해 휘파람까지 불기도 했다.) 작품을 완성했다.
두 사람 중 어느 사람의 작품이 더 훌룡했는가의 여부는 비교하기가 애매하지만, 확실히 무뚝뚝한 독일인(박수를 쳐도 모른 척)에 비해서 프랑스인은 능글맞았지만 재미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글로벌 토크쇼 "미녀들의 수다"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미녀 중 하나인 미르야 말레츠키가 대략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독일사람이라고 모두 약속시간을 칼같이 지킨다거나, 철두철미한 건 아니라고, 모든 독일사람이 그렇다고 생각하는 건 선입견이라고 했다.
또한 독일에서는 우리나라처럼 자기계발서가 아닌 소설이 베스트셀러라고 했으며, 꽤 선전하고 있는 한국 만화 열풍에 대해서도 이야기한 적이 있다.
웬지 독일하면 떠오르는 진지함과 질서정연한 느낌. 모든 걸 합리적으로 이치에 맞게 따지고 사고하는 민족.
독일제라면 상당히 튼튼하고 고장이 잘나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이런 독일인에 대한 선입견조차 독특한 유머로 잘 살려 독자로 하여금 배를 잡고 웃게 하는 책이 있으니, 바로 "세계를 재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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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의 제목을 접했을 때 드는 생각은 "세계를 재다니? 어떻게?" 였다.
책의 제목부터 웬지 대책없으면서도, 독일인의 특유의 따분할 정도로 진지함을 대표하는 느낌이다.
이 책은 서로 다른 방법으로 세상의 크기를 측정하려고 했던 알렉산더 폰 홈볼트와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이다.
좋게 말하면, 시대를 앞서가려고 했던 지식인들의 행보이고, 요즘식으로 이야기 하자면 자신이 흠미를 가졌던 분야에 엄청나게 몰두한 괴짜들의 황당했던 삶을 보여준 책이기도 하다.
유복한 귀족출신에 세상 모든 것을 경험하고 직접 보고 탐험하고자 했던 18세기 독일의 지리학자, 기후학자, 해양학자, 탐험가인 알렉산더 폰 훔볼트.
그가 등장한 챕터들을 읽다보면 너무도 역동적이다.
바다, 산, 강, 동굴, 수도. 제목만으로도 그가 세상을 직접 경험하고 측정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모험을 했는지가 눈에 훤하다.
직접 전류를 경험하다가 죽을 뻔하기도 하고, 가스등을 가지고 지하에 내려가다가 질식사할 뻔하기도 하고. 맹독을 직접 맛보기도 하는 두려움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고, 어찌보면 무모해보이기도 하는 이 남자에게는 죽음조차 자신이 경험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 하다.
세상의 위험과 유령조차도 몸소 체험하고자 하고.
배멀미조차 무시하면 극복할 수 있는 확신에 가득한 집념의 사나이가 있다면 훔볼트가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생에 한 번 올까말까한 일식을 바로 볼 수 있는 기회를 너무도 고지식하게 자기가 할 일을 해야 하기에 놓쳐버리기도 하는 그는 정말인지 전형적인 독일인처럼 보인다.
그런 답답함과 융통성없음에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그의 여행 동반자였던 봉플랑처럼 "그렇게 항상 독일사람답게만 행동해야 하는 겁니까?"하고 푸념하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인 18세기 수학자이자 물리학자, 천문학자이기도 한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 훔볼트와는 달리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수학에 대한 빼어난 재능으로 인해서 어린 시절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다.
더군다나 그는 나의 학창시절 눈물을 쏙 빼게 만들었던 과목인 수학과 물리에서 자주 등장하는 그 인물이 아닌가. 개인적으로 훔볼트보다 웬지 가우스의 이야기에서 많이 웃었던 것은 아무래도 더 많이 각인된 인물이라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학창시절 아무리 물리 선생님을 짝사랑하고 많은 노력을 했음에도 결코 이해되지 않던 그의 공식들. 결국은 이해가 되지 않아서 그냥 외워야 했던 평범한 범생이였던 나의 피나는 눈물이 맺혀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리저리 정처없이 같이 모험하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던 훔볼트와는 달리 바로 앞에서 나를 한심한 듯이 쳐다보는 듯한 가우스.
그가 등장하는 챕터들은 역시나 정적인 느낌이 드는 선생, 수, 별들, 정원.
작품 속에서의 그를 보고 있노라면 유명한 미국드라마 몽크에서 나오는 탐정 몽크나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에서 등장하는 천재 작가처럼 결벽증이 심각한 히키코모리 캐릭터같다.
너무도 뛰어난 재능때문에 남들보다 한단계 앞서 나가있고, 멍청하고 평범하다 못해 하품 나올 것 같은 학생들을 생계를 위해서 가르치는 일도 지루하고 따분하기만 하다. 수를 파악하는 건 빠르지만, 그외의 일에는 도통 관심이 없었던 그를 보고 있노라면, 이기적이기도 한 자부심이 강한 괴짜가 떠오른다.
(부인과 관련된 일화를 보자면 더더욱 그런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의 자부심은 학문에 대한 그의 생각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너무나 다를 것 같지만 결국 한 가지 목표를 향해 질주하고 집중해 온 두 사람이 서로 만나는 것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서로의 과거부터 시작해서 다시 현재로 교차되면서 그들 일대기의 흥망성쇠가 진행된다.
독일인에 대한 편견을 해학적으로 표현하기도 한 이 작품은 결국 가우스의 한 마디로 정리된다.
"무엇인가를 이해하기 전에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아마도 학문일 겁니다."
그렇다, 인류가 지금까지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끊임없는 호기심과 그것을 밝히기 위해 평생동안 노력했던 괴짜들이 아닐까. 물론 분야가 달랐다고 하여도 결국은 같은 정점에서 출발한 사람들.
두려움없이 망설임없이 신세계로 나갈 수 있었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들이 여기에 있을 수 있는 것이고, 우리 또한 다른 신세계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지금도 자신의 분야에서 결코 포기를 모르고, 매달리고 있을 세상의 수많은 괴짜들에게 건배를 하고 싶다.
이미 젊은 나이에 일찌감치 데뷔한 영리하고 독특한 작가 다니엘 켈만.
한국독자들이 이 책을 보면서 많이 웃기를 바란다고 했던 인터뷰가 문뜩 떠오른다.
(정말로 많이 웃었다. 특히 가우스 챕터에서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할 정도였다.)
세계를 재다의 여러가지 표지들~ 뽀나스로 넣어봤다.^^
P.S 엄숙하고 재미없는 독일 문학에 결별을 선언한다지만, 개인적으로 독일인들을 무뚝뚝하게 느낄망정 독일문학은 절대 그렇지 않았다. 어린 시절에 소중하게 읽었던 아동문학들(케스트너, 프로이슬러, 헤르만 헤세, 그림형제, 미하엘 엔데 등등)은 모두 독일문학이었거늘.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싶지만, 현재 우리나라에도 불고 있는 장르문학의 열풍이 독일을 휩쓸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미지 및 정보 출처 : 민음사판 세계를 재다, http://blog.literaturwelt.de/, http://www.buecher.at/, http://www.claudio.de/, http://de.wikipedia.org/wiki/Carl_Friedrich_Gau%C3%9F
http://de.wikipedia.org/wiki/Alexander_von_Humbol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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