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터하면 나에게 떠오르는 추억은 어머니의 교통사고다. 그것도 하마터면 어머니가 돌아가실 뻔한 끔찍한 사고의 추억이다.
스웨터와 교통사고가 무슨 연관이냐고 되물어보실 분도 있겠지만, 교통사고를 당하기 직전까지 손재주가 좋으신 어머니는 장사하시면서 바쁜 틈틈히 겨울에 나와 오빠 그리고 어머니 본인이 입으실 스웨터와 조끼,카디건을 짜셨다.
나는 내심 예쁜 핑크색으로 스웨터를 짜주시길 바랬지만, 정작 나에게 돌아온 스웨터는 가장 싫어하는 밝은 초록색 계열(실제로는 참 이뻤고 꼼꼼하게 잘 짜여졌지만)이었고, 싫은 내색은 최대한 하지 않고 받아 입고 다녔다.
완성된 스웨터를 입고 다닐 무렵, 어머니는 차를 몰고 집에 황급히 오시던 도중 상대방의 과실로 교통사고를 당하셨다.
차는 완전히 일그러져서, 형체를 알아볼수 없을 지경이었고 어머니는 다행히 큰 부상을 입으신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한달 이상은 입원해 계셔야하는 상태셨다.
지금도 생각하면 아찔한 기억의 단상이다.
큰 이모님의 덤덤한 전화 목소리 "어머니께서 사고를 당하셨어.(그 뒤로 들리는 "근데, 많이 다치지는 않으셨어."라는 소리는 웬지 잘 들리지 않았다.) 그 당시 초등학교 4학년 무렵이었는데, 눈 앞이 깜깜해지면서 눈물을 뚝뚝 흘렸던 것이 아직도 생생하다.
집에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오셨고, 낯설은 이모 할머니가 오셔서 우리 남매를 챙겨주셨는데, 가장 답답했던 건 어머니를 바로 보고 싶었는데 아무도 어머니에게 데려가주지 않았던 사실이다.
심지어 아버지조차도 우릴 데려가주지 않으셨고, 며칠이 지난 후에나 어머니를 볼 수 있었는데, 겉보기엔 멀쩡해보이셨지만 내장기관과 갈비뼈를 다치셨는지 카디건 아래로 보이던 통통했던 손가락이 앙상해서 어딘가 많이 아프신 거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이번에 읽게 된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선물 스웨터"는 웬지 이런 나의 추억의 단상과 상당히 비슷한 부분이 많았다.
3년전 아버지를 여윈 주인공 에디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환경의 변화들이 낯설기만 하다.
홀로된 어머니는 늘 바쁜 일상을 간신히 보내고 있고, 에디는 이번 크리스마스에 무슨 일이 있어도 멋진 자전거 선물이 받고 싶지만, 마음 한구석으로는 형편이 좋지 않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있다.
하지만 에디는 자전거를 꼭 받고 싶다고 고집을 부린다. 책 속에서 자전거는 돌아갈 수 없는 예전의 시간들,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당시의 아주 넉넉하지는 않았어도 현재보다는 여유있었던 상황으로의 동경과 부러움을 뜻하는 느낌이기도 하다.
자전거를 너무나 받고 싶어했던 에디에게 돌아온 선물은 어머니가 짜주신 초라한 스웨터.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대하고 또 기대하던 12살짜리 소년에게는 커다란 실망이었을까.
(마치 그 옛날 바비 인형이 가지고 싶었고, 양배추 인형이 가지고 싶었던 나에게 바비 인형이 아닌 짝퉁 제니 인형과 양배추 인형이 아닌 짝퉁 인형을 사주셨던 어머니에게 겉으로는 실망한 내색도 못하고, 마음 속으로는 많은 실망을 했던 나처럼.)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집착은 결국 에디를 돌이킬 수 없는 슬픈 현실로 가게 만든다.
어느 순간 모든 걸 잃어버린 어린 소년의 절망감을 절절히 느낄 수 있었다.
에디의 방황하는 모습은 웬지 호밀밭 파수꾼의 홀든이 연상되기도 했다.
주인공과 비슷한 어린 시절 어머니를 여의고, 형제들도 줄줄히 잃었다는 작가의 자서전적인 소설이라서 그런지,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하고있다고 느끼는 점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곁을 떠난다는 어린 소년의 깊은 슬픔과 분노가 가슴 깊이 와닿았다.
사람들은 누구나 인생 속에서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게 된다.
그 어려움 속에서 나는 혼자가 아니고 주변에는 날 생각해주는 사람들이 많으니, 먼저 손뻗어서 도움을 요청하면 된다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
자존심때문에, 속 깊은 상처는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을 꺼라는 생각에, 다른 사람들도 어려울텐데 기댈 곳이 있을까하는 생각에 도움을 잘 요청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내보이기 싫은 가장 깊은 마음 속 이면에는 형편없는 자신의 본모습이 일그러진 체 내팽겨져 있다.
가장 들키기 싫은 초라한 본 모습.
언제나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하고, 정진하고 싶어해도 언제나 본 모습은 형편없다는 사실에 때론 절망하기도 하고 괴로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처럼. You raise me up의 노래 가사처럼.
흙발로 짓밟히고, 구겨지고, 젖어도 돈 1000원의 가치가 변하지 않는 것처럼.
그 누구나 소중한 사람들이고,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이다.
아주 가끔씩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해서 의심하고 힘들어하시는 분들께, 너무나 힘들어하시고 계신 분들께 너무나 추천해드리고 싶은 책.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처럼~놀라운 크리스마스의 기적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의 순간에도 새로운 출발과 기회가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선물 스웨터. 아마도 스웨터가 책 중에서 뜻하는 말은 사랑이 아닐까?
타인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야말로 절망에 가득찬 세상을 온기와 희망으로 바꿀 수 있는 유일한 힘이니까.
어머니가 교통사고를 당하셔서 슬퍼하고 있는 나에게 자신의 어머니도 교통사고를 당하셔서 고생하고 있다면서 끊임없이 위로해주었던 단짝 친구들과 어머니가 짜주셨던 스웨터를 칭찬해주시면서 많이 걱정해주셨던 초등학교 4학년때 담임 선생님이 웬지 생각난다.
그 당시 나는 느끼지 못했지만,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알게 모르게 많은 도움과 위로를 주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때를 잘 넘길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사람이란, 사랑받고 다시 사랑을 베푸는 존재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달게 해준 책.
요즘처럼 어려운 시기에 꼭 한번쯤 읽어보고 많은 분들이 나처럼 힘을 얻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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