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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드라마 산책/원작이 있는 영상

언 애듀케이션 An Education (2009)

by 코코리짱 2010. 3. 22.


학교에서는 결코 배울 수 없었던 한 소녀의 혹독한 인생 경험에 대한 이야기

01

이 영화를 접하기 전에, 먼저 여고시절을 회상해보자면 다들 즐거웠던 때라고들 하지만.
나에겐 늘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하고 싶은 것보다 많았던 중세 암흑기같은 시기였다.
연합고사를 치면서, 이 학교만큼은 정말 안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던 만큼 3년내내 그 학교를 내 의지가 아닌 억지로 댕겨야 했으니 이 얼마나 생지옥인지.
역사가 길지 않아, 내가 4회 졸업생이었던 비교적 자유로운 교풍(물론 내가 졸업하고 나서부터 교복으로 바뀌었지만)에 교복자율화, 남녀공학인 공립중학교에서 교복과 나름 8학군 명문에 속한다는 사립여학교에 들어갔으니 거기에 내가 쉽게 적응할리가 만무했다.
원래도 아웃사이더 기질이 다분하지만, 겉보기엔 모범생인 척 하고 댕겼던 나는 그냥 아이들사이에서 겉돌 수 밖에 없었고.
요즘처럼 공부외에도 다른 길을 재빠르게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공부외에는 다른 꿈도, 길도 없었던 그때 그시절의 암담했던 나.
(지금이라고 뭐 다를 께 있겠냐만은...)
귀밑 1cm의 단발머리, 체크무늬 스커트,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초록색 계열의 색깔, 목이 죄는 차이나 칼러에 지정된 스타킹, 얌전한 구두에 묻혀진 내 개성.

이미 조숙했던 아이들은 중학교때부터 대학생들과 사귀거나, 이성을 만나곤 했고 그 애들은 웬지 모르게 어딘가가 달라보였다.
집->학교->학원 정도의 루트밖에 모르던 나와는 달리 뭔가 새로운 세계를 접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고작해야 접할 수 있는 이성이라고는 총각 선생님들, 그것도 막연한 동경, 존경의 감정을 가졌었던 어렸던 나와는 달리 뭔가 성숙한 매력이 있었다.

하지 말라는 게 하라는 것보다 100배는 많은 나와 같은 고교시절을 60년대 소녀 제니도 똑같이 겪고 있었다.


세계2차 대전 이후 영국의 60년대, 명문 사립여고에서 오로지 옥스퍼드만을 목표로 지루하기 짝이 없는 수험생인 제니.
세계의 패권자는 19세기 식민지 시절 팍스 브리태니카의 빛나는 시절을 뒤로 하고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팍스 아메리카나)으로 넘겨주고, 사회 분위기 자체가 넉넉하지 못한 그런 시대.
그래서 그런지 영상자체도 칙칙한 모노톤.
취미생활조차도 대학지원조건에 맞추기 위해서일뿐, 오로지 공부에만 매진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부담감에 시달리던 어느날.
오케스트라에서 첼로 연주가 끝난 뒤 내리는 비를 처량맞게 맞고 있던 제니에게 다가온 한 남자.

비싼 첼로가 걱정되서 그러는데, 첼로만 자기 차에 태워주고 넌 곁에서 걸으면 안될까하는 정중한 제의에 소녀의 가슴은 뛴다.

소녀의 지루하기 짝이 없던 모노톤 일상에 어느 순간 들어온 남자.
그 남자 데이빗으로 인해 제니의 일상은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한다.
학교앞에서 뽀대나는 차로 마중와준 남자를 보면서 웬지 가슴설레였을 17살의 소녀는 사랑에 빠지고, 새로운 세상을 접하게 된다.

생각지도 못한 꽃다발, 친구들의 부러움과 동경의 눈빛.


늘 정해진 장소와 스케쥴에 익숙해져있던 제니에게 데이빗은 부모님께 결코 받아내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저녁 약속의 승낙을 받아내고.
오페라, 재즈클럽, 흡연, 경매, 경마장등 학교 바깥 세상을 알게 해주며, 즐기게 해준다.
좁고 좁던 세상에서 좀 더 넓은 곳을 보게 되었다. 모노톤의 세상은 화사한 칼라톤으로 변해가고.

제니 앞에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연상의 능력남 데이빗.

데이빗은 그녀에게 A Whole New World를 보여준다.
마치 알라딘이 쟈스민공주에게 지니의 힘을 빌려서 새로운 세상을 보여줬던 것 처럼.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점은 마법의 힘은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지니의 힘이 없어지면 사라지는 시한부 마법)

오로지 옥스포드 진학만이 유일한 목표였던 소녀 제니는 갑자기 선택의 기로에 서게된다.
옥스포드로 진학해서 평생 지루하고 재미없게 살 것인가, 아니면 내 꿈을 당장 이뤄줄 수 있는 그 남자와 함께 프랑스로 가서 즐거운 나날들을 보낼 것인가에 대해서.
당신이 제니라면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 인가.
옥스포드 진학행일까 멋진 연상의 능력남과의 결혼 및 프랑스행일까.
중요한 건 인생에 있어서 어떤 선택을 내리건, 그에 따른 결과는 고스란히 자신의 몫이라는 점이다.
어찌보면 사회로 나가기전 가장 큰 관문 중에 하나라면 하나랄 수 있는 진학의 시점에서 일상 속에 일탈을 경험한 한 소녀의 자서전이 웬지 남 이야기같지 않은 건, 우리네 인생살이가 한번쯤은 혹독한 인생 경험을 겪었기 때문이리라.
영국 저널리스트 '린 바버'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기도 하기에 더 설득력이 가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영국 영화를 좋아하는 나에게 60년대 영국의 금욕적인 모습은 웬지 새롭게 다가왔다.
그리고 눈에 익은 멋진 배우들도~
여러 영국드라마에서 이미 큰 가능성을 보여줬었던 캐리 멀리건은 사랑에 빠져있던 소녀에서 성숙한 여인으로의 변화를 잘 그려내었고.
피터 사스가드는 약간은 느끼하지만 유머러스한 데이빗 역할을 잘 소화해냈다.
헐리우드 영화에서 이미 여러번 단역으로 얼굴을 비췄던 아리따운 로저문드 파이크, 도미닉 쿠퍼, 그리고 엠마 톰슨과 올리비아 윌리암스까지 탄탄한 연기진이 있었기에 이 영화가 설득력있게 그려졌는지도 모르겠다.
웬지 시종일관 차분하고 절제된 영상과 달리, 경쾌한 재즈 선율, 라파엘 전파의 번 존스, 제인 에어 등등 알면 알수록 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이 영화의 엔딩을 보면서 손뼉칠 정도로 공감갔다는 말을 하고 싶다.

매번 인생의 쓰라림을 경험해도, 어른이 되어도 결코 현명하지 못한 우리들의 자화상같은 영화.
그렇기에 나는 이 영화가 사랑스럽다.

프랑스에 대해 막연한 동경을 가지고 있는 소녀는 성숙해보이기 위해 오드리 햅번풍의 머리와 원피스를 입었고, 능력있는 연상남은 007의 제임스본드처럼 쫙 빼입었다.그리고 누구나 그렇듯이 첫사랑의 기억은 마치 로마의 휴일같기를 바랄 것이다.



<이미지 및 정보 출처 : http://www.cineseo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