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앞에 임하는 벨라의 자세, 그리고 어장관리백서의 모범적인 교과서인 이클립스
뱀파이어물을 좋아하는 나에게 처절한 배신감만 선사했던 트와일라잇.
베일에 가려져 신비스럽게 시작되었던 뱀파이어와의 사랑의 시작은 뉴문에서 제이콥이라는 새로운 라이벌의 등장으로, 에드워드의 빈자리를 잠시 채워주었었고.
4부작 중 3부인 이번 시리즈인 이클립스에서는 제이콥과 에드워드 사이에서 갈등하면서, 인간으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뱀파이어의 삶을 선택해야 하느냐에 대한 그야말로 선택에 기로에 선 벨라의 모습을 보여준다.
포스터에서 보여주듯 노골적으로 삼각관계를 그려주겠다는 이 영화.
일식인지, 월식인지 모를 선택에 기로에 선 그야말로 우유부단의 극치를 넘어서 보여주는 여주인공 벨라와 너무나도 잘 맞아떨어지는 영화제목이기도 하다.
처음엔 이 영화를 보러 가면서, 얼마나 더 지루하게 봐야 할까의 고민이 있었지만, 시리즈의 3번째라고 이젠 익숙해질때로 익숙해졌었나보다. 원래 약발도 처음에만 드는 법이고, 한 번, 두 번 연속해서 하게 되면 그 효과가 덜해지지 않던가.
대패로 밀어야 할 닭살씬과 무수한 애정씬, 그리고 대사들도 슬슬 무감각하게 받아드릴 수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번 시리즈의 감독은 서티데이즈 오브 나이트의 감독인 데이비드 슬레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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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출신답게 대사 한마디 한마디도 뭔가 비꼬는 듯한 느낌이 살짜쿵드는 건 어쩔 수 없는 듯하다.
트와일라잇이 폼생폼사의 멋드러진 영상에 2%부족한 느낌을 주었다면, 뉴문은 거기에 뭔가 변수를 더하려 했으나 지루하기 짝이 없었던 그런 느낌이었고. 이클립스에선 뭔가 화끈한 액션과 격렬한(?) 로맨스를 더하려 했었던 것 같다.
분명히 전작들과 다를바없어보이는 닭살 대사에 닭살 행각의 남발이 무더기로 쏟아지는데.
왜 다른 느낌이 들까.
트와일라잇 시리즈는 어떻게 보면 철저하게 여성을 공략한 소설이기도 하고, 영화이기도 하다.
여자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꿈꿔봤을 그런 환상.
나를 안달나게하고 차거워보이지만, 언제나 나만을 위해주는 멋지고 간지나며 약간은 이해심많은 조각미남과
육체적으로 너무나도 멋지고 날 뜨겁게 달아오르게 할 수 있는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즉흥적인 짐승남.
이 둘이 나만을 사랑하고 유치할 정도로 경쟁하고 질투하고 싸우는 모습을 상상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연애를 하면서 이런 경험이 없었던 대다수의 평범한 여성들이 이런 환타지를 꿈꾸고 싶은거다.
현실에서의 연애야 어떻든 말이다.
여성을 위한 로맨스 소설 원작을 남자 감독 입장에서 보고 해석했으니, 영화상에서 보여주는 그 수많은 닭살 대사와 행각은 웬지 모르게 한두번은 꼬아져있다.
특히 제이콥과 에드워드의 삼각관계에서 벨라를 두고 벌이는 두 남자의 신경전이 너무나도 리얼하다고 할까.
제이콥이 멋드러지게 자신의 몸을 과시하면서 등장했을 때, 질투로 이글이글 타오르는 에드워드가 던지는 대사가 명작.
"그 녀석은 T셔츠도 없다니?"
질투로 이글이글 타오르는 두 남자. 당장이라도 싸울 듯한 분위기. 이 사이에서 난 아무것도 몰라요 표정으로 멍하게 벙떠있는 벨라.이런데도 두 남자의 사랑을 받고 있으니 확실히 복받은 여자
아직은 어리고 철없는 애인을 옆에서 끊임없이 챙기고 또 챙겨야 하는 에드워드의 모습은 참 안되었다.
그뿐인가? 이도저도 아니면서 친구로서 계속해서 끊임없이 관심을 표해주길 바라는 벨라의 태도에 매번 헷깔려하고 상처받는 제이콥 역시 불쌍하긴 마찬가지이다.
두 남자가 노골적으로 주고받는 대사를 듣고 있노라면, 수많은 닭살 행각이 중화되기도 하는 효과도 있고.
사랑은 아무리 움직이는 거라지만, 시도때도없이 남자친구 앞에서 마치 나를 한때 버려뒀던 것에 대한 복수를 하듯.
무지막지하게 다른 남자와 애정행각을 찐하게 벌이거나, 남자친구가 자신의 무력함을 느끼게 하는 벨라의 모습이 같은 여자인 나에게도 참 안 좋은 모습으로 다가왔다.
여자든, 남자든 관계에 대한 태도는 명확히 해줘야 좋다고 생각하는 만큼 영화 보는 내내 뭐, 저런 애가 다 있나~하면서 분노하면서도 은근슬쩍 부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난 한번도 이런 경우를 겪어본 적이 없으니까.
늘 자신을 보호자처럼 보호하고 지켜주려고만 하는 에드워드에게 한창 나이인 10대 소녀 벨라는 서운함을 느낀다.
졸업을 하고 미래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 뱀파이어 남자친구를 따라 가족과 지인들을 모두 뒤로 하고 인간적인 삶을 포기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 21세기에 살고 있는데도 한참 연상이어서 구식인 남자친구가 자꾸만 몸 사리고 있는데, 온몸을 다해 접근해오는 새로운 남자 사이에서의 갈등등등. 어찌보면 그 나이대 여자들이 할 수 있는 고민을 그린 영화이기는 하다.
그 외에 전작에서 반려자를 잃고 군대를 모아 복수하는 빅토리아나 베일에 쌓인 채 뒷짐지고 침묵을 지키고 있는 볼투리가 사람들.
컬린가 사람들의 하나둘씩 벗겨지는 과거의 모습들 등 흥미진진한 요소들도 많았고, 기존의 액션영화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긴 해도 트와일라잇 시리즈 중에서는 가장 볼만했던 전투씬들.
지금까지의 시리즈 중에 가장 재미나게, 천국의 계단을 보면서 한없이 웃어댔던 그 심정만큼이나 꼬이고 꼬인 심사로 감상했던 이클립스.
트와일라잇을 재미나게 봤던 분들에게는 추천하고 싶은 영화다.
이미 뉴문까지 감상하신 강심장의 소유자시고, 지루함의 극치까지 참아내신 분들이라면 이 영화는 비교적 무난하게 감상하실 수 있을테니.
시리즈 중 가장 웃기게 봤다고 생각되는 작품이기에 영상 여기저기에 비꼬음의 미학이 듬뿍 담겨있는 이 영화를 꼭 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대신 여자친구 손에 이끌려 몇시간동안 지루해하실 수많은 남자분들께는 애도의 한숨.
아, 또 있다. 어장관리란 어떻게 하는 것인가. 남자의 질투심은 어떻게 자극해야 하는가에 대한 것들을 배우고 싶은 분들(개인적으로 추천하고 싶지 않은 방법이지만)이라면 꼭 보시길 바란다. 벨라가 그 모든 걸 전수해주실 것이니.
<이미지 출처 : http://www.cine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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