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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드라마 산책/원작이 있는 영상

멋진하루 (2008)

by 코코리짱 2008. 9. 26.

헤어진 두 연인이 채무자와 채권자의 관계로 마주치면 과연 어떨까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주는 멋진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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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헤어졌던 두 연인이 만나면 멋진하루가 될까.
영화 멋진 하루의 시놉시스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개인적으로 옛 연인과의 우연한 마주침은 그다지 유쾌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랬을까.
어느날 지하철역에서 스치듯이 마주쳤던 그를 보고 나는 반갑다는 생각에 다가섰지만, 모자를 깁숙히 눌러쓰고 나를 외면한 채 지나갔던 그 사람.
헤어졌던 두 연인이 마주치는 것도 껄끄러운데, 채무자와 채권자 사이라니.
그런데, 제목은 아이러닉하게도 멋진 하루.

실은 내가 이 영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순전히 어머니 덕분이다.
유난히 영화 취향이 까다로운 어머니께서 갑자기 관심을 가지시면서 제목까지 나에게 언급하시며, 꼭 보고 싶으시다고 하셨다.
한국 영화는 쳐다도 보시지 않던 어머니께서 보고 싶은 영화라니, 과연 어떤 영화일까.
전도연과 하정우가 출연하고, 위에 이야기했듯이 상당히 껄끄러운 상황에서 마주치는 두 사람 하루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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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시작은 경마장에서 누군가를 찾는 한 여자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누군가를 찾아낸 그녀를 알아보는 한 남자.
여기 웬일이냐면서 반가워하는 남자에게 여자는 다짜고짜 돈 갚으라고 말한다.
그리고 옛 여자에게 돈을 주기 위해, 옛 남자에게 돈을 받기 위해 그들의 길다면 긴, 짧다면 짧은 하루는 시작된다.

마냥 철없는 듯한 남자와 까칠한 여자의 돈을 받기 위한 여정이 시작된다.


영화 속에서 그들의 관계가 어땠는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은 없다.
간접적으로 잠시 잠깐 지나가는 다른 사람들의 대사와 상황 속에서 대충 과거를 떠올리는 듯한 주인공들의 모습이 보일 뿐.
그 남자 병우는 상황이야 어쨌건 1년전 애인이었던 그 여자 희주를 만난 게 마냥 반갑다.
성격이 낙천적인 것인지, 일단 자신을 못 믿고 돈 당장 내놓으라는 희주에게도 느긋하다.
돈 안 준다는 말은 안한다. 옛 애인에게 줄 돈을 위해 여기저기 찾아다닌다.

첨엔 뭐 저런 철면피가 다 있을까 싶을 정도로 능글맞고 변죽 좋은 병우였지만.
돈을 빌리기 위해 떠나는 여정 속에서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 그의 상황이 어떤지가 서서히 드러난다.
희주 역시 녹록치 않기는 마찬가지지만, 어찌보면 희주보다 더 만만치 않은 그의 상황.
그런 상황임에도 그녀 희주에게 돈을 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의 모습은 웬지 안타까우면서도 얄밉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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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없이 까칠한 그녀와 너무나 느긋한 그.
그들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는 듯했지만, 영화 후반부에는 웬지 다른 그들.
그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남의 이야기 같지 않다고 생각된 건 IMF를 겪고,
근 10여년간의 경제침체기 속에서 그런 사람들을 많이 봐왔기 때문일까.
다니던 회사가 도산당해서 하루 아침에 실업자 신세가 되기도 하고.
명예퇴직이나 권고사직을 당하는 부모님들을 봐왔으며, 소위 88만원 세대로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느라, 연애는 꿈도 꾸기 힘들고.
사귀던 사람에게나, 결혼하려던 상대와도 돈 때문에, 상황때문에 헤어지기도 하는 우리 세대의 자화상같은 영화가 아닐까.
(채권자와 채무자로 서로 만나게 되는 옛 연인의 상황이 바로 그러하기도 하고.)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았던 유쾌하면서도 잔잔한 영화. 멋진 하루.
나에게 이 영화가 긴 여운으로 와닿는 것은 저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올 가을 꼭 봐야 할 영화로 강력추천하고 싶다~
영화 여자,정혜에 이어서 잔잔한 일상의 이야기를 그린 이윤기 감독만의 분위기도 좋다.

아, 참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이 있다.
일본 작가 다이라 아즈코씨의 단편집 중 하나의 단편인 멋진 하루.
궁금하신 분들은 영화를 보고 한 번 읽어보시길~
멋진 하루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다이라 아즈코 (문학동네,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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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영화 속 병우의 대사가 계속 맴도는 건, 비슷했던 예전 기억의 조각 중 하나때문일까.
       "같이 있을 때 행복한 줄 알았는데, 헤어질 때 오히려 행복해하는 널 보며 조금 아팠지." (대충 이 대사였던 듯.)
       영화 속에서 정말 좋은 노래가 나오는데, 최근 노래를 잘 모르는 나는 들어도 무슨 노래인지 몰라서 아쉬웠다.ㅠㅠ

애드립인지 실제인지 분간할 수 없었던 능구렁이 9단의 하정우씨와 시종일관 표정의 미묘한 변화로 희주의 복잡한 감정을 표현했던 전도연씨의 연기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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